알쓸신잡/잡학

어느 노인의 유언장

푸름^^ 2023. 6. 20.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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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를 넘겨산 시골부자 노인이 죽었어요 ​
그는 노후에 재산도 많아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요
건강도 죽기 전까지 좋았고 지역사회활동도 많이 해서 사회적으로 명망도 받았어요
자녀도 서넛이나 두었는데 모두들 여유 있게 살고 사회적 신분도 좋았지요

그런데 그는 남은 재산 대부분을 자신의 후처에게 남겨 주었어요

집에서 기르던 개에게도 땅 마지기를 재산으로 남겼지요​
자녀들에게는 조금씩만 나누어 주었어요
그러자 자녀들이 반발 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어떻게 그럴수가 있느냐며 노인을 비난하였지요​

"늙은이가 망령이 들었지!!"
"후처한테 쏙 빠졌던 거야."
"젊은 마누라 마술에 걸려든 거지."
"후처로 들어갈 때부터 뻔한 속셈이었어."

특히 기르던 개한테도 땅 마지기를 준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의아해 했지요

자식들이 '개만도 못하게 되었다'고 비아냥 거리기까지 하였어요

그 노인이 70세가 넘어서 늙은아내가 죽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30대의 젊은 여자를 후처로 맞아들일 때에도 사람들은 말이 많았었지요​

그때 그는 몸이 불편하지도 않았고 옆에서 간호를 해야할 만큼 병에 든것도 아니었지요

그러므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었었지요
"늙은이가 주책이지, 그 나이에 무슨 재취야.."
"아마 기운이 넘쳐나는가 보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젊은 여자를 맞아들여?"
"막내딸보다도 더 젊어요, 글쎄..."
"재취를 하더라도 분수가 있어야지." ​

그러면서 모두들 젊은 여자가 틀림없이 재산을 노리고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하였어요

지금 그것이 현실로 나타났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정한 부녀처럼 서로 재미있게 살았지요

그렇게 그들은 10년을 넘게 살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80세가 넘어 죽은 그의 유서에는 자식들에게 주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어요

"내 소중한 자식들 보아라!!
너희들은 나와 가장 가까운 나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너희들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내게서 많은 혜택을 받으며 살았고 지금은 모두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지 않느냐?

물론 남은 재산도 유산으로 상속받을 자격이 있는 나의 혈육들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거라.
내가 괴로울때 누가 진실로 나를 위로해 주었고
내가 아플때 누가 곁을 지켜주며 함께 아파했었는가를...
울적할때 마음을 풀어주고, 심심할 때면 함께 놀아준게 누구였더냐?

너희들은 아느냐?
나이 들어 늙으면 더욱 외롭다는것을
예쁜꽃 한 송이가 얼마나 마음을 즐겁게 하는가를.
정겨운 노래 한 가락이 얼마나 가슴을 뛰게 하는가를.
정(情)은 외로울때 그립고, 고마움은 어려울때 느껴지는 것이란다
그래서 행복할때의 친구보다 불행할때의 이웃이 더욱 감사한 것이지 병석의 노인에게는 가끔 찾는 친구보다 늘상 함께 지내는 이웃이 훨씬 더 고마운 것이다. ​

젊을때의 친구는 재롱을 피우는 귀여운 자식들이라면
늙어서의 이웃은 내 어린 시절의 부모와 같은 분들이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서 너희들은 친구라 할수 있고 너희들의 젊은 계모와 검둥이는 내게는 부모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

내가 왜 친자식인 너희들에게 보다
나의 젊은 아내와 우리 검둥이에게 남은 재산 대부분을 물려주었는지를 이제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

그러면서 그 노인은 이런 말을 덧붙였어요
"젊은 아내가 못된 계모로 살아도 내게는 가장 소중하고 고마운 분이다.
설령 유산을 노리고 들어왔다 하더라도 그가 내게 잘 하는 이상 내게는 그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내 인생의 가장 괴롭고 힘없고 외로운 마지막 시기를 그래도 살맛이 나게 하고 위안을 받으며 살수 있게 해 주었다는 사실을 너희 모두는 꼭 기억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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