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잡학

빈배

푸름^^ 2023. 10. 12.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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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온화한 품성을 지닌
대배우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냐며 그 비결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말로 대답을 했습니다.

" 배가 다른 배와 충돌을 했을 때 사람이 타고 있는 배라면 당연히 누가 잘했나 못했나를 따지며 큰 다툼으로 번질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충돌한 배가 아무도 없는 빈 배였다면 누가 잘했나 못했나 따질 일도 싸울 일도 없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만약 자신의 마음이 빈 배와 같이 비워져 있다면 다툴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이 먼저 사과를 해 버리면 간단히 해결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제껏 살아 왔더니 지금까지 누구와 다툰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

오래 전 어느 극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당시는 선후배간의 위계질서가 너무나 엄격해 후배들은 감히 선배 앞에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단원 모두가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는데 어느 후배가 선배에게 신발 끈이 풀어져 있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그러자 선배가 아무런 말없이 구두끈을 졸라 맸습니다.

그리고 후배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구두끈을  다시 풀었습니다.

원래 선배가 맡은 역할이 나이가 든 여행객역 이었는데 지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구두 끈을 풀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야 여행객의 지친 모습이 잘 표현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죠.

이 모습을 지켜 본 다른 후배가 저런 놈을 가만 두다니 ...

왜? 버릇이 없는 저놈의 말을 받아 들이셨습니까?

그냥 구두끈을 풀라고 하면 됐을텐데 왜 직접 푸셨냐고 하면서 은근히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위해서 해 준 조언인데 그걸 그 자리에서 당장 거절을 하고 혼을 낸다면 두 사람의 마음이 상하게 돼 연습이 제대로 되겠냐고 하면서 슬쩍 미소를 띄며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별명이 스펀지였던 이 배우는 기자가 인터뷰를 했었던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국민 배우와 대배우로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빈 배에는 욕심도 탐심도 이기심도 다툼도 원망도 없습니다.

그저 물결 따라 흘러갈 뿐입니다.

그러나 빈 배에는 무엇이든지 실을수가 있습니다.

사랑과 배려와 은혜와 격려와 같이 좋은 것들로 채울 수가 있지요.

따지지도 말고 묻지도 말라는 말이 유행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냥 슬쩍 넘어가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텐데...

사람들은 얄량한 자존심 때문에 시시콜콜 따지다 보면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심지어 큰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마음이 빈 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빈 배'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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